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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백 ㅡ1ㅡ

20여년전........

난 그저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회에 내던져진 스무 살 밖에 안된 철부지였다.

어릴 적 부모님은 항상 가게를 하셨다.

특히 아버지는 나에게 공부하라는 말씀은 거의 하지 않으셨고 힘든 가게 일에도 자식을 잘 챙겨주시는 그런 아버지였다

아버지께서 가게를 하실때 나는 10대를 지나 아무것도 한 거없이 성인이 되고 말았다.

장래나 미래에 대한 진로같은 건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기보단 막막하기만 했다.

아버지는 저렇게 열심히 가족을 위해 가장으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데 

나도 성인이 되서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데 이젠 애도 아닌데.....

자존감도 낮아지고 일찌감치 좌절부터 맛본 잉여인간 같이 느껴졌다.아니 그보다도 더 바닥같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새벽까지 게임을 하고 늦게까지 자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아침 장사 나가기전에 내방에 조용히 들어오셨다

마침 화장실 가려고 잠이 깼는데 

평소에는 내 방에 안 들어오시던 아버지께서 웬일인지 내 방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오시길래 그냥 자는 척을 했다

속으로는 '왜 들어온거야???화장실 가야 하는데' 라며 짜증이 났었다.

아버지는 조용히 내 머리맡에 무언가 놓고 다시 나가시면서 

"어디 가서 기죽진 마라.이 아빠 아들이 기죽어 살면 쓰나.당구 물리면 당구비 내고 술값 낸다하면 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내라.우리 아들 뒤엔 이 아빠가 있다..알았지?"

아버지는 혹시라도 아들이 잠에서 깰까봐 혼잣말씀 하시듯 하셨다.
그리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가셨다.

난 너무 창피했다.
하지만 역시 철부지여서 그런지 속으로 '그냥 돈만 놓고 가지 생색은...' 이런 생각밖에 안들었다.

지금으로 치면 아버지를 꼰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괜히 아침부터 화도 나고 심술이 나서 당구장에라도 가서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같은 백수 친구를 불러내 당구장에서 보자고 했다.그런데 당구장에 가니 친구가 누군가랑 같이 온거였다.

눈짓으로 '누구야?'하고 물어보듯 제스터를 취했다

"어.인사해..나랑 친한 선배형이야.너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나 보러 온다는 형을 여기까지 같이 데리고 왔어."

얼떨결에 인사를 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나랑은 비교도 안될 만큼 깨끗한 이미지에 그선배는 존댓말을 하며

"앞으로는 말 놓을께요.잘 부탁해요" 라고 했다

무언가 압도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내 친구랑 친한 형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같이 친해지게 되었다

그 형은 우리에게 술도 사주고 밥도 사주며 형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곤 했다.

멋있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부모님께 돈을 빌려 소규모 창업을 했는데 손익분기점이 지나며 이제 안정적이 되서 부모님께 빚도 갚았다고 했다

어느 순간 그 형은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단조롭고 따분했던 나의 일상은 친구의 선배..아니 나의 친한 형과 자주 보내는 삶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형에게 제안을 받게 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안정적이긴 한데 사업을 좀더 확장하려고 하거든.나랑 동업해보는 건 어때?"

난 놀라기도 했고 겁도 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인정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면서 궁금한 걸 물어봤다.

"형 근데 전 가진 돈도 없는데요?"

"동업이라고 해서 자본을 똑같이 투자하라는 건 아니야...공장을 하나 알아본게 있는데 현장 관리를 맡아주면서 제품 제작까지 우리가 하려고 그 적임자로 너가 괜찮은 것 같아서 말야.일하는데 나이,학벌 그런거 따지는 건 옛날이나 하는 거지.잘 생각해 보고 전화줘~참 일단 월급은 두둑히 줄거야"

I.M.F가 지난지 몇년 밖에 안되었는데도 탄탄하게 회사를 키우고 아직은 20대인 형이 큰 인물같이 느껴지고 존경스러웠다.

형의 차를 타고 가서 둘러본 공장은 상당히 커보였다.아직 이주 전이라 공장 정문은 닫혀있는 상태였다.

형이 계약금을 내면 열쇠를 받고 전기가 들어온다고 했다.

난 꿈에 부풀어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형이 준 서류에 서명을 하고 지장을 찍었다.

"우리 이제 함께 가는 거다.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거야 알았지?"

이제 아버지에게 큰소리치고 날 백수라고 무시하던 엄마에게도 모피코트를 사주면서 

보란듯이 아들 잘둔 걸 고마워하라고 자랑할 일만 남아서 하늘을 날아갈 기분이었다

이제 내 인생엔 장미빛 미래가 펼쳐질 것 같아 마치 성공한 사업가라는 착각이 들었다.

첫달에 일반직장인들 보다 많이 들어온 월급을 부모님께 드릴 때만 해도 선배를 의심하지 않았었다.

다만 아버지의 무표정한 질문에 기분이 상할뿐이었다.

"넌 그 선배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냐?"

방문을 닫고 생각해보니 난 선배에게 내 모든 걸 다 보여줬는데 그 선배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정작 이름뿐이었다.

성도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친구에게 선배의 근황을 물어보니 

"야 왜 그걸 나한테 물어보냐?그 형하고 연락 안한지 오랜데...너 요즘 그 형하고 같이 일한다 하지 않았어?"

직접 그 형에게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같이 죽고 같이 살자고 했는데 내가 의심하는 모습을 보이면 웬지 내 장미빛 미래도 사라질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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