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전역하고 스물넷에 결혼했을 때,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즐거웠다. 아이 생각도 없었고, 6평 오피스텔에서 시작한 신혼은 불편함보다 ‘자유’를 더 크게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십대 후반이 되니 튼튼하던 소파도 비꺽거리듯 우리 사이에도 웃음보다 소음이 조금씩 더 생겼다. 너는 아이를 원했지만, 우리는 늘 앞뒤 없이 살아왔기에 난 그게 무서웠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서른이 넘어 어렵게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수십 번의 유산 끝에 들리던 그 작은 심장 소리에 네가 어느 날보다 더 많이 울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때 나도 결국 눈물이 터졌던 건 기쁨보다도… 네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 둘 사이 얼마남아 있지 않던 몇 가닥의 나사선이 꽉 조여지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른을 맞이했고 어느새 마흔을 향해 가고 있다. 단단하게 끝나면 좋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짝이던 것들도 광이 죽고, 겉은 멀쩡해도 마음엔 조금씩 녹이 스며드는 것 같다. 그래도 아마 우리는 그때처럼 이번에도 이 순간을 또 넘어 사십을 건너가겠지. 그때가 그리운 건 그 시절이 더 아름다워서라기보다 그때의 너를 더 많이 봐주고 그때의 우리를 더 열심히 사랑했어야 했다는 마음 때문일 거다. 오늘 이렇게 글을 남기는 건 내일이 되면 또 계산해야 할 것들과 책임, 쉴 틈 없는 걱정 속에서 이 마음마저 잊어버릴까 봐 속상해서다. 괴롭다 생각했던 시간들이 사실은 내가 지키고, 사랑하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곁에 두고 싶은 것들 때문이라는 걸 이 밤에야 다시 생각한다.
진접읍·고민/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