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가는 소낙비로 세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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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하나안반하나
반하나안반하나
안산시 상록구 본오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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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남편의 인생 한 잔

 
먼 길 가는 소낙비로
세상의 모든 길이 지워진 하루
아직도 행선지 없는 저녁비는
절름거리며 술상 위에 내려서고 있을 때 
 
난 삶은 계란을 반으로 갈라 보름달을 띄어놓고
가난이 질퍽거리는 마른 멸치 서너개와
천정을 향해 목고개를 세운 소주병을
내 기울어진 인생처럼 눕혀 술잔에 담고 있었다 
 
저무는 하루를 머리맡에 걸어둔 채
초저녁잠 일찍 들었다
“꼴…. 꼴…. 꼴..” 따르는 술잔 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뜬 아내가 말했다 
 
“온종일 논다고 피곤할 건데 좀 쉬라고..” 
 
부질없는 날들이
모인 방안에서 소일 하는 난
“이때가 되어서야
내 마음이 쉬고 있는 거라고..”말했다 
 
빈 가슴 쓸어주듯 아내가 물었다
‘술이 뭐가 그리 좋냐고“ 
 
난 목고개 비틀어진
멸치 대가리를 하나 씹으며 말했다
“지나간 아픔도 내일의 걱정도
잊은 척 할 수 있으니까..“ 
 
그 말에 한숨을 쉬더니
널브러진 이불을 애써 가슴팍까지
끌어당기며 말을 이어갔다
“어찌 하루가
멀다 하고 맨정신일 때가 없냐며” 
 
난 마른멸치
몸통을 반으로 가르며 말했다
“내 마음을 세탁해서
널어 놓는 때가 지금이기에
난 술 먹을 때가 맨정신이라고..“ 
 
아내는 가난한 날에는 대답조차
죄가 된다는 듯 날 노려보더니 다시 말했다
“뭔 술을 365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그리 먹냐고” 
 
“목이 말라 먹는다고..."
데쳐놓은 콩나물처럼 힘없이 말했다 
 
그 말을 끝으로 아내와 나 사이에
얼어붙은 침묵이 싫어
가난이 덕지덕지 눌러 붙어있는
냉장고 문을 열고 새 술병을 들고 오는 나를 보고는 목에 힘을 주며 다시 물었다
           “또 목 마르냐고.?" 
 
방바닥에 구멍 난 장판을
허트러진 웃음으로 긁어대며 난 말했다
      “목 마를까 봐 미리 먹는 거라고” 
 
아내는 날 닮은
축 늘어진 런닝 셔츠를 보며 말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지
   뭔 술을 그리 마시느냐고”  
 
난 아내를 마주볼 자신이 없어
내 발밑에 아깝게 떨어진 멸치 대가리를 주우며
“사랑이 고파서 ...
            사람이 고파서....
                    정이 고파서…. 먹는다고 말했다 
 
아내는 당신의 인생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다는 듯
노려보더니 한마디 더한다
    “술 마시면 빨리 죽는다고” 
 
난  기다렸다는듯 말했다
“마셔도 죽고 안마셔도 죽는게 인간이라고..” 
 
TV 불빛 사이로 비쳐대는
아내의 독수리 같은 눈길을 피해
어둠이 풀어놓은 적막감에 나 홀로 깊어져
술잔 속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잔에 뭐가 들었길래
        쳐다보냐고” 다시 물었다 
 
노려보는 아내의 눈길을
차마 마주 볼 수 없어 술잔을 내려다보며
      “사람 겉은 눈으로 보지만
             속은 술로 본다며
   행복도.. 슬픔도... 아픔도…. 그리움도...
                  이 술잔 속에
            다 들어 있다고….“난 말했다 
 
아내는 내일 새벽을 달려 출근해야 한다며
꼴 보기 싫다는 듯 나가서 먹으라더니  
   "알코올 때문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난 마누라 옆에 잠든 아들놈을 바라보며
"알코올 때문에 태어난 놈도 있다며“웃었다 
 
시간을 세워놓고 술잔과 주거니 받거니
허물을 깨고 있는 날 더 볼 수 없었는지
아내가 화를 내며 말했다
         “저놈의 술이 원수라고” 
 
             난 마지막 남은
쓰러진 멸치 대가리를 애써 세우며
              “주님이
원수를 사랑하라 했다고….”
                                 당당히 말했다 
 
술잔과 입술 사이에서
술 덤벙 물덤벙 하는 나를보며
체념한 듯 하품으로 TV를 끄더니
“인제 그만 마시고
   내일 마시든지 하라며" 불을 끄버렸다 
 
난 그제서야
두 눈을 크게 뜨고 아내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 마실 술을
      내일로 미루면 안된다고” 말했더니 
 
아내는 술먹는
나를 보면 할말이 많아지는가 보다
벌떡 일어나더니
“술을 왜 그리
사랑 하냐고”화를 내며 물었다

굳어가는 내 혀바닥에 애써 힘을 주며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건 술이지만
한사람에게 줄 수 있는 건 사랑이기에
     

마음이 당신에게
      가도록  운반하는 놈이 술이라고,,,,,, 
 
                난 술을 마시며 배웠다
                          아파도 
 
                           슬퍼도 
 
                      눈물이 나도 
 
          안 그런 척 웃으며 꾹 참는 법을... 
 
       “중독되지 않는 슬픔을 너는 아느냐고...”
                         첫 잔엔
                양이 들어가 있더니
                         셋째 잔엔
                사자가 들어가 있고
                    마지막 잔엔
    돼지 한 마리가 들어가 있는 게 술잔이라며 
 
           실랑이 하다 지쳐 잠든 아내처럼
       창틀에 머물다 시들어버린 달을 보며
              난 마지막 말을 하고 있었다
                         술 한잔에
     풀 한포기라도 아름다워 질 수 있는게
                    우리네 인생이기에
                             술잔도                             인생도
          넘치지 않을 만큼만 먹을 거라고.. 
 
 
 
 
              나도 이제 나보다 더 취해
           잠들어 버린 술병을 뒤로하고
    아내가 잠든 이불속으로 들어가야겠다 
 
 
 
             "내일 담배값이라도
          놓아두고 갈 아내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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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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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하나안반하나
리드오프
안산시 상록구 해양동

가슴짠하고나의삶이아닌가생각하게되네요~넘멋진글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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