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캔모아, 미도다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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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캔모아, 미도다방, 전원돈까스 등등
아직 영업하는 곳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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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4
회장님 문의 드립니다
먼저회장님도 댓글 동참 하신것 같던데
당근 때문에 발바닥이 불이 난다와 오늘 달 촬영한 글 올리고
댓글을 기다리는것 같던데 동네글에 익숙치 않아 무슨내용 인지 모르겠네요.
회장님 지금 반월당
으로 불려지는 연유 모르실걸요
지금도 적십자 병원이 있는지 기억이 없는데
그왼쪽 사거리 모서리에 일제의 잔재 반월당 이란 상가가 있었네요
중학교때 까진 건물 이 존재 했는걸로 기억되네요
하여 반월당 지금
백화점 이라고 생각
하심 될듯.
추억담 또 올려보지요
그땐 저희 학교는 봉덕동 경북중학교와 같은교내 였지요
같은 공립 학교라도
모순 이였지요
교명은 달라도 모자와 교복 팔목에
백색3선
이에 시샘이난 대명동 소재였던 경북고등 학교를
대봉동 경북중고
같이 하기로 결정
서로 교사건물을
교체 하기로
건물만 교체 사용 하면 될것을
책걸상 어깨에 매고
대명동 행 거리가 어딥니까 지금 생각하면 웃을 일들 이지요 지금 세대의 학생들은 상상도 못 할 일들 이지요
언급 했듯이 그때 한강 이남에선 제일큰 강당 이라 했는데 당시에는 국가 보조가 충분치 않아 증축의 자금 염출로 수단으로
공부 못 하는 자제를
일류고인 경북고에 입학 시키기 위해 보결생 이라고 돈을 주고 입학을 했어요
지금 생각 하면 좀 처럼 이해가 되질 않지만 그땐 그것이 수단 이였고 정답 이였어요 수난사라 해야 옳을지 지나온
과거사 입니다.
그땐 그래도 특혜가 주어 졌지요
1교시때 출석여부 호명 하면 이구동성
기차통학 입니다 하면 지각처리 않았지요
웬지 그시절이 그리워 교가를 한번 불러 볼게요
팔공산 구름위에 높이 서 있고
금호수 푸른물결 뛰고 노니는
여기 화랑이 놀던 달구언덕에 우뚝히
솟앗구나 우리의00 고 아아 그이름 길이 웬 누리에 빛나라
아아 그이름 ㅇㅇ고등학교.
또 그때 증기기관차라
연착이 다반사로
기차통학생은 지각의 연속 수업중에 교실에 들기도 민망 했었고
그때 기차통학이 3개노선 인데 경부선 김천발 같은 경부선 밀양발 유독 대구선 경주발이 연착이 심했지요 경부는 복선이고 대구선은 단선 이라그런건 같기도 하네요 상하행 차가 같이 몰릴땐 한쪽이 피양을 해야 때문으로 알고 있네요
그래도 그때가 좋았고 그립네요
남여 혼승이라 여학생 많은곳 으로 가서 인기 얻기 노력도 많이 했지요
저는하양에서 통학하는 한살차와 두살차의 집안 질녀의 부추김을 많이 받았지요
그때 그분들은 어디로 출가 어떻게들 사시는지.
오타 많네요
살펴 읽어 주세요.
청라언덕 빼 놓을 수 없지요 불원100 여장의 사진 올려 볼게요
우리 학창시때는 교동시장을 양키시장 으로 명명 지금은 없지만 대구극장 송죽극장 도 생각나네요
또 없어진 육군중앙 극장 외화만 상염 했고 변사의 구성진 해설 알기쉽고 시원 스러웠징요
전 집이 반야월 이라
기차통학을 했지요
하교가 일찍일땐
딱 이였지오
그때 버스라곤 대구역에서 남산대동 가는 버스뿐 이였고
저는 중고 모두 대명동 야시 골짝에 다녔는데 앞에 군용 헬기장 학교강당은
한강 이남에서 제일 크다고 했었고
대구역에 내려 우천시는 남문시장만 지나면 비포장 흙탕길 명덕 노타리 옆 옛 복명국민 학교인가 앞 산더미 같이 쌓인 쓰레기장 교동시장의 빵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나는데 같이 먹었던 일본어로 젠장이 단판죽 이였죠
모두가 추억어린
인생사 입니다.
저는 부모님의 완고함땜에 중 고등학교시절 봉산동학교만 6년주구장창다니고
고향인 범어동주변만 어슬렁햇심돠
뭐니뭐니해도 교동시장 빼놓을순없을듯요
쎄라비음악다방
하이마트 음악감상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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