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놀 쓰러진 자리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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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하나안반하나
반하나안반하나
안산시 상록구 본오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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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처럼

 

저녁놀 쓰러진 자리가

바다로 간 하늘가를 지나

은하수 모래알들보다 많은

별들이 노닐다 멀어져간

새벽이 와도 ​

 

“당신 오늘은 일찍 들어와야

해?

엄마 칠순인거 알지?

부산 갈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잖아“ ​

 

그 말을 등 뒤에 매달고 나간

남편은

언제나 그날처럼 이런저런

일 핑계로 사람들과 어울려 밤을

지새우다 ​

 

“띠, 띠, 띠…. 띠..” ​

 

얼레빗 새벽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과

스치듯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난 큰 가방을 들고서 걸어

나가고 있었다 ​

 

목쉰 바람을 따라

택시로 내달려 멈춰선

거리를 지나

지하철이 어둠을 뚫고

도착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고갤 숙여 들여다본

핸드폰엔

남편은 문자조차 끝내

보내오질 않았다 ​ ​

 

엽서 한 장으로 시월이 오듯

미안하다는 문자 하나에도 열릴

내 마음은 끝내 닫아 버린 채

버스에 올라 스쳐 지나가는 초록빛

세상들을 막연히 헤아려보다

먼 산 그늘에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나는

나즈막한 집들을 바라보며 까닭 모를

슬픔으로 난 벙어리가 된 핸드폰을 누르고

있었다 ​

 

“엄마!

나 지금 부산 가고 있어” ​

 

“김서방과 함께 오는 거지?” ​

 

“김 서방 요즘 바빠” ​

이번 기회에 한 달이고 두 달이고 푹

쉬면서 난 지난 십 년의 내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며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보려 했다

늘 손끝 하나 꿈쩍 안 하는 남편에겐

와이셔츠 빨고 다려 출근하기가 벅찰

거라는 한가닥 생각에 내 입가엔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져가면서,,,, ​ ​

 

고속버스가 텅 빈 도로를 달려

휴게실에 도착하더니

간단히 식사를 하실 분은 다녀오시라는

기사님의 안내방송을 귀로 넘기며

식당으로 걸어가 음식을 마주하고 앉은 내

눈에 중년의 한 여자가 선글라스를 낀

남자에게

가락국수를 먹이고 있는 모습에

식당 안 사람들의 눈총은 말이 아니었다

젓가락으로 긴 사리를 들어 올려

입으로 후후 불어 바람으로 식히고

그것을 남자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으니까.. ​

 

“휴.! 저 나이에 저러고 싶을까.

애정표현을 하고 싶으면 집에서나

할 일이지.. “ ​

 

남자는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입술을 내밀어

그 음식을 맛있게 받아먹다

얼굴에 국물이 묻으면 여자는 웃으며

휴지를 꺼내 닦아주며 국물까지 맛있게

훌훌 마시게 하고선 ​

 

”배고팠지? 맛은 어때?“ ​

 

"응..... 맛있네.. "

 

식사를 마치고 더듬거리며 아내에게

다가간 남자는 허리를 숙여 아내를 등에

업고는 ​

 

“두발만 앞으로가..

이젠 왼쪽으로...“ ​

 

다리가 불편한 아내가 말하는 데로

앞이 보이질 않는 남편과 걸어가는 모습에

아…! 하고 신음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고

말았다

회색빛 비가 내리는 길을

아내가 펼친 우산속에서 한 떨기 꽃처럼

걸어가는 부부를 보면서 내 눈가엔 비 보다

굵은 눈물이 맺히는걸 느끼며... ​ ​

 

우두커니 버스에 오른 나는

빗속을 뚫고 가을을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아름다운 부부의 뒷모습을

빗물이 머문 창가에 그려보다

“부산에 도착했습니다"는

기사님의 목소리와 함께 무거운 가방을

들고 대합실로 빠져나오고 있을때

반가운 이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시선이

머문 대합실을 고갤 숙여 스쳐 지나갈 때쯤

무거운 가방이 가벼워지는걸 느끼며 내

옆에 다가온 그림자에 고개를 돌려보니

빙긋이

웃으며 걸어가는 남편의 얼굴이 슬픔과

함께 오버랩되고 있었다 ​

 

“당신이…. 어떻게.” ​

 

서울서 줄곧 내가 탄 버스를 따라 내려온

남편은 내가 바라보며 눈물 흘렸던 그 부부를

내 뒤에서 나와 똑같은 눈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남편의 차에 오른 나는 ​

 

“차 안에 이게 뭐야” ​

 

“장모님께서 우리 결혼할 때 손에 쥐여주며

이혼할 맘이 생길 때 바라보라던 그 상자야 ” ​

 

"그걸 왜?"

 

"당신 잊었어?

잘 간직 했다가 장모님 칠순때

가져오시랬잖아"

 

​생신상을 마주보며 앉은 우리부부에게

 

“정은 심은 대로 걷는다고..

둘이 같이 있을 때 후회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라며

상자를 열어보이시는 엄마를 보며

 

“엄마! 이 안에 든게 젓가락이었어?

 

“마주 보며 살아가는

거울의 인연이 부부야 이것아..“ ​

 

........ ​

 

“부부란 여기 놓인 젓가락처럼

하나가 없으면 아무짝에도 필요없 듯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무엇을 하든 하나여만 하는

이 젓가락처럼 살아가라는 뜻이었어“ ​

 

​비록 티격태격 싸울지라도

함께 있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맙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는지ᆢ

할 일을 다한 해님이

산 넘어 쉬러 가다 서울로 올라가고 있는

우릴 바라보며 ​

 

“해 떨어지면 보고 싶은 사람” ​

 

그 사람이

“부부”라고

노을진 자리마다

그려놓고 있었습니다 ​

∙ 조회 53

댓글 2

반하나안반하나
젬마
안산시 상록구 본오2동

너무너무 맞는말인데 우리는 순간순간 또 잊어서 서로에게 상처주고 후회하지요.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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