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퇴근한 남편 앞에 ...

프로필

반하나안반하나
반하나안반하나
안산시 상록구 본오3동
매너온도
48.6°C
닻꽃 연가


퇴근한 남편 앞에 아내는
이혼 서류 한 장을 내밀어 놓는다
감지할 수 없는 굴레에 가려진 남편이
힘들어 지쳐가는 일상에 아내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는 이혼이었다

아이의 얼굴도,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도
두 눈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이
가슴속 깊은 응어리로 남아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며
지난 7년을 서로에게 건넸지만
남편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내 모습이 싫었어..
당신까지 더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두 사람은 때늦은 나이에 결혼해
7년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

오늘도 회색 도시 빌딩 숲 사이로
비가 내린다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저 우산 안에는
얼마나 많은 사랑이 숨어있을까
고뇌하는 남자에게만은
이 비가 까만 먹물이 되어
가슴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빗줄기를
세워보기라도 하는 듯
거슬러 하루하루를 더듬어보다
지난 추억 하나를 꺼내어 지하철역 앞에서 멈춰 세운다

“ 비... 우산....
. ...그리고
사랑의 기억 그 어디쯤에서..”

남자는
그녀를 처음 만났던
지하철 계단 위에서부터
기억의 영상을 돌리기 시작한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니
기다렸다는 듯 비가 내리고 있었다
황급히 우산을 펴고 거리로 나가려는 순간 한쪽 귀퉁이에서 가녀린 흰 지팡
이 하나에 의지한 채 그 흔한 우산
조차 없이 이 빗 속을 뚫고 나갈 힘까
지 없다는 듯 멈칫거리는 그녀를 본
기억의 첫 시작은
여기서부터 였기에....

한참을 멈칫거리던 난
펼쳐 든 우산을 그녀의 손에 쥐여준 채 빗방울을 밟으며 튕겨져 가는 발걸음 위로 그녀의 음성이 뒤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고마워요
내일 이 시간에 여기 있어줄래요
돌려드리고 싶어요 “

한참을 뛰어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를 본 친구는
온몸이 갯바위 파도가 쓸고 나간 자리에 매달려있는 미역 줄기처럼 젖은 모습에

“바보같이 이 비속을 우산을 줘버리고 넌 그냥 오면 어떻해 “

“그녀를 보는 순간 그러고 싶었어...”

비 오는 날 우산을 준 건
내 전부를 준거라며 싱긋이 웃어 보이며 잔을 감싸 언 손을 녹이면서
난 그녀의 얼굴을 커피잔 속에서 찾고 있었다

한차례 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간 이 비는 사랑이 되어 찾아왔기에
내가 잃어버린 건 우산이 아니라
날 찾아온 사랑이라 생각하면서....

“내일 이 시간에 여기 있어 줄래요
돌려드리고 싶어요 “

온종일
그녀의 그 말만 내 귀엔 들렸고
별과 달님에게
맘속에 품은 그녀를 소개하느라
난 까맣게 밤을 지새운 채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감에 빠져있고 싶었기 때문에
기다릴 걸 알면서도 난 천천히 걸어
그녀를 처음 만난 지하철 입구
계단 앞에 섰다

오늘도
어제의 그날처럼 비가 왔고
그녀는 공기인형처럼
나를 기다리며 그렇게 서 있었다
난 한참이나 건너편에서
그녀를 바라만 볼 뿐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녀는
비가 오는 날에는 그 우산을 돌려주려
채무자처럼 한참을 빗소리에 머물다
돌아가곤 했다

"돌려받는 순간 관계의 끝이 될까.."

그녀 앞에
나서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던 나는
소나기가 해비가 되어 날리든 어느 날
즐거움을 준 것으로 자기 일을 다 한 꽃처럼 웃어 보이며 그녀 앞에 섰다

“ 비가 오는 날엔
여기서 기다려줄래요
제가 우산을 씌어 드릴게요 “

그렇게
그녀는 내리는 비를 타고 내게로 왔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내 손에는 쓰고 있는 우산 말고도
작은 우산 하나가 더 있다
이젠 습관처럼 그녀의 우산까지 챙기는 나는 머뭇거리고 있는 그녀
에게 다가가

“오늘의 내가
당신을 기다린 것처럼
내일의 나도
여기서 당신을 기다릴 겁니다 “

라고 말하고 있었다

“서면역까지
절 데려다 주실 순 있나요 “

나에게 수제 커피점을 한다며
꼭 커피를 대접하고 싶었다는 그녀와
혼잡한 지하철 대신 난 택시를 탔다
작은 둘만의 공간에 만족해하며
미소만 짓고 있는 나에게 그녀는 메모지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내려서는 이 비속에
그녀에게 붙지 못하고 왼쪽 어깨에
떨어진 빗물을 고스란히 맞은 채
걸으며 그녀와 도착한 곳은
길모퉁이 작은 수제 커피 숍

능숙한 손놀림으로 커피를 내려
내게 건넬 때 그녀의 손을 처음 보게 되었다 뜨거운 물과 날카로운 칼날에
손은 매일 같이 상처투성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한 그녀는
당당하게 말했다.

"장애는 사람들이 우리를
구분하려고 쓰는 용어일 뿐이라고."

“민우 씨는 어떻게 생겼나요?”

“얼굴은 가름하고
눈은 놀란 토끼처럼 커요 “

“보이진 않지만
내 마음에는 별도 있고 달도 있어요
당신과 똑같이... “

시각장애로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
때론 술에 젖어 지내던 때도 있었다며
더욱 견디기 힘든 건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질 때였다는 그녀의 모습에서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뭉클함에
코끝이 시큰거리는 걸 감추려
창가로 보이는 빗줄기에 누워버린
이파리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는 또다시 말을 이어갔다

비록 볼 순 없지만
귀가 있어 들을 수 있고,
만질 수도 있는 지금의 모습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기에

손에 화상을 훈장처럼 생각하며
부지깽이 힘이라도 빌려
배우고 익히며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는 그녀는 마치 열정이라는
방부제라도 복용한 듯 애써 찾은 행복이야기를 하는 그 모습 쯤
아마 그때부터 사랑이 자란 것 같다

우연처럼...
인연처럼....
운명처럼.....

그날
그녀와 이야기하는 내내 난 우산을 씌어주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었다
왠지 저 우산을 씌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이제 빗속으로 내가 달려가고 있었다
내 마음에 사랑의 씨앗이
이 비를 맞으며 자라고 있다

꼿꼿하게
빗살을 튕겨내는 꽃잎처럼
난 달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
말하지 않으면 후회할듯한 이 느낌
나는 헤어지며 문자를 남겼다

“난 내일도
오늘 같은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햇살 고운 하늘이 만들어준
숲길을 찾아가기 위해 우린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역에 마련된 작은 쉼터에 앉아 머물던 그녀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내게 물었다

“사랑이 뭔 줄 알아,?,,”

“ 어쩌면 사랑이란...
완벽한 조건보다는 뭔가 부족한 모습이 보일 때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건 아닐까,?“

빙긋이 웃어 보이며 그녀는 말했다.

“사랑은.....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지 않는 거래
그냥 내가 너에게 무언가를 줄 때,
네가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고
나도 기뻐지는 것.
그것이 사랑. 아닐까 ?“

난 이제 비 오는 날에는
그녀에 대한 보고픔이 먼저 내린다
그녀를 보고 싶을 때마다
난 습관처럼 비를 찾게 되었고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작은 우산 하나로

"그녀에게 사랑의 우산을 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구름이 빽빽하다고 다 비가 될까….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알지 못할
너만의 우산이 되어 지켜주고 싶은
내 마음이야 이 꽃 받아줘... “

“무슨 꽃이야...?”

“꽃 이름은.... 닻꽃인데
어부의 꽃 이래 배의 닻을 닮아서...."

나도 저 닻 처럼
당신이 떠내려가지 않게

“ 이제 네 마음의
바다에 닻이 되어주고 싶어”“

남자는
거기서 지난 기억을 멈춰 세운다
황급히 윗옷을 손에 거머쥔 뒤
왠지 그곳에 가면 그녀가 있을 것 같은 생각에 흩어진 시간 한 줌들이
비와 같이 지나가던 날
남자의 사랑은 지금 빗속을 달리고 있었고

그녀도
날마다 남자와 같은 기억과 재회하며
비가 오는 날이면

(처음 만난 여기서 )
(처음 만난 그 모습 그대로 )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우산 속으로 들어간
남자는

“정희야!
아직 내 마음의 닻이
당신 바다에 있어... “

두 사람은

인연보다
더 큰
하늘이 맺어준
천연 앞에

사랑은
"길들이는 게 아니라 물들이는 것"

이란 걸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 조회 131

댓글 6
1

반하나안반하나
호박먹은때지(탈퇴)
반하나안반하나
호박먹은때지(탈퇴)

사랑은 서로를 물들이는게 아니고 물들어가는거죠


지금 당근 앱을 다운로드하고
따뜻한 동네생활을 경험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