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머문 자리에 봄이 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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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하나안반하나
반하나안반하나
안산시 상록구 본오3동
매너온도
51.0°C
어부바 할아버지

겨울이 머문 자리에 봄이 걸어 나오더니
오늘은 상윤이네 집에 꽃이 피었나 봅니다

“아버님! 진지드세요“

“오냐....아범은?”

“오늘 좀 늦는가봐요
상윤이도 할아버지 옆에 앉으렴“

어느새 식탁에는 봄이 준 행복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늘 머물 것 같았던
봄이 떠나간 자리에
약속도 없이 설익은 겨울이 찾아오더니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아버님! 죄송해요...
상윤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애미야! 이 어린걸 두고...”

상윤이 아빠가 출장 중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가버린 뒤
엄마마저 다른 세상의 봄을 찾아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상윤이 유치원에서 오기전에 갈게요”

1월의 겨울은 할아버지 혼자
지켜주기엔 몹시 춥다는걸 아는 걸까요
유치원에서 돌아온 상윤이는
엄마가 사라져간 흔적을 더듬으며
빈자리부터 찾습니다

“할아버지! 엄마는?”

원망섞인 눈에 슬픔을 가득 담고서
파도에 패인 갯바위처럼 먼산을
보고 말없이 서 있던 할아버지는

“엄만...볼일이 있어서
서울에 갔단다 몇밤 자고 올거야“

“근데 아빠는
백 밤이 지났는데도 왜 안와
아빠 나쁘다 ...
상윤이도 안보고 싶은가보다
그치? 할아버지“

삶이라면 지겹도록 살아오신 할아버지라도
죽음이란 단어를 이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결국 얼버무린 진실 앞에서
상윤이는 보채다 잠들어 버렸고
가혹하리 만큼 밀려오는 현실앞에
할아버지는 잠든 손자의 머리를 매만지며
목밑에 잡힌 멍울같은
시린 아픔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보내고 떠나는 모든 것들 속에
남은 여생을 알 수만 있었더라면......“

가슴에 안긴
이 가을을 보내지 못해서일까요
똑딱거리는 시간은 말도 없이
어찌 이리도 빨리 걸어오는지 상윤이는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떠난 자리를
할아버지 홀로 버텨가며
오늘도 어김없이 학교로 향합니다

“상윤이 할아버지 오셨어요?”

“네 .. 선생님”

교실문을 들어서며
담임 선생님과 정겨운 인사를 나누는
할아버지를 보고는

“할아버지.....왜 이제와...”

“미안하구나! 이 핼비가 좀 늦었지?
오다가 숨이차서...
계단에 좀 앉았다 오느라고...“

왼발이 태어날때부터 소아마비라
할아버지는 늘 상윤이를 업고
이 길을 오가고 있었습니다

상윤이를 업고 나서는 운동장에선
언제 와 있었는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비와함께 내리고 있었고
할아버지 등에 업힌
상윤이가 받쳐 준 우산을 쓰고
도란도란 행복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할아버지 앞으로 백년만 딱 더 살아..“

“그렇게나 많이?”

“응...내가 커서
할아버지 맛있는거 많이 사줄때까지

“오냐..오냐...”

천년만년
같이 하고픈 맘이야...

너를 두고 가야할 때가
하루라도 더디게 오기를
할아버지는 한걸음 한걸음
디딜때마다 빌고 또 빌었습니다

애틋함으로
오늘 이 하루를 버티고
사랑으로
또 내일을 열어가는 할아버지니까요

꽃이 핀 자리에 별이 들고
달이 지나간 자리에 햇살이 머물던 시간들이
흘러가던 어느 날,

일찍 밥상을 물린 할아버지는
손자를 두 눈 가득 담고서
장기를 두며 흐뭇한 시간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등골을 타고 빈속을 휘어감은 달빛에 조차
아픔 맘을 내어놓지 못한 채
시간이 갈수록
몰려오는 흉통에 가슴을 움켜잡고서
마루에 나와 앉아 밤을 홀딱 세우고 맙니다

때 이른 아침,
상윤이를 업고 걸어가는 이 길이
영원하기를 빌어보지만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요
학교 정문을 걸어나온 할아버지는
가까운 병원을 찾아갑니다

“할아버님...
아무래도 시내에 있는 큰 병원에 가보셔야겠어요“

비탈진 길을 가는 소달구지처럼
쳐진 두 어깨를 내어놓고
걸어간 병원에서 나오는 할아버지는
먹빛 그림자를 드리운 채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오늘은 선생님께서 차를 태워주셨어“

“그랬구나“

그날 밤,
혼자서 놀고 있는 달을
창문으로 바라보고만 있던 할아버지는
잠든 상윤이의 얼굴을 내려다 보면서
세상 끝에서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이 기쁨 하나 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달이 진 자리에 밀려오는 생각들이
무거워 지고만 있던 할아버지는
오늘도 해질녘 땅거미 진 거리를
상윤이를 업고 가면 갈수록
쉬어야 하는 곳이 늘어만 갑니다

“할아버지! 힘들어?”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꾸나”

밴치에 앉아 뛰어 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엔 눈물이 맺힙니다

“할아버지! 울어?”

“아니다, 봄이라
꽃가루가 날려 눈에 들어왔나보다”

저 아이들처럼
걷지도 목발조차 딛지 못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가슴은 메어지듯 아파오지만
휠체어 조차 갈 수 없는 언덕길을 돌아
숨이차는 이 길을 또 걷고 걸으며
가슴 내어주는 할아버지의 그 마음을
하늘만은 알아주기를 빌어 볼 뿐입니다

할아버지 등에 업혀
수 많은 별을 헤는 상윤이가
어부바 할아버지가 힘들 때 마다
불러주는 노래 한소절 마디마디가
아프게 느껴집니다

“넓고 ~넓은 ~이 세상에~ 오막살이 집 한 채
학교가는 ~상윤이를 ~업고 가는 할아버지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할아버지''

노랫말을 바꾸어
불러주는 손자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넘고 다닌 이 길이
이젠 얼마남지 않았다는걸 할아버지는
알아가고 있으니까요.......

상윤이를 학교에 일찍 등교를 시킨 할아버지는
먼길을 갈 채비를 한 후 길을 나섭니다
종이 한장에 적힌
주소를 찾아 여지껏 가본적 없는
산과 들을 지나 낮선도시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파란 대문 위에
붙어있는 초인종을 누르고 있습니다

“아니..아버님 연락도 없이...”

“미안하다ᆢ 애미야ᆢ
사정이 생겨 이렇게 널 찾아왔구나“

두 사람은 침묵같은 말들을
허공에다 뱉어 놓은지 한 시간이 지나갈 쯤,
자리를 틀고 일어나 뒤돌아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찾아올 때 보다 더 무거워 보입니다

다음 날,
지나는 구름에 떠밀려오듯
나타난 엄마는
상윤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까지
가방 여기저기에 짐들을 챙겨놓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점심 시간에
할아버지 좋아하는 두부가 나왔어
줄려구 가져왔어“

행복이 묻은
방문 손잡이를 열어 재친 상윤이는
어렴풋한 가슴자리에 남아있는
엄마일 거라는 생각만으로
“엄마야....”라고 되뇌어봅니다

어색한 시간속에서
고개를 숙인 채 엄마의 말을 듣고 있던
상윤이는 체념한 듯
할아버지 품으로 달려 들어가며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맙니다

“이 할애비 걱정말고
엄마 말 잘듣고 꼭 휼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씨실과 날실로 만나 엮은 시간 속에서
할아버지의 굽은 허리가 손자의 밥이 되고
발이 되어진 시간을 되뇌이며
아직 흘린 눈물이 남아 있었는지
머리위로 떨어지는 할아버지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 마음을 알았다는듯
고개만 끄덕이며
눈물을 멈춰세우지 못하고 있는 두사람

“상윤아!
시간 없으니 빨리 타“

온 시간을 함께 한 할아버지 손을 놓고서
차 안에 오른 상윤이는

“엄마,,,,
할아버지 병이 다 나을 때 까지만
옆에 있어주면 안돼?“

찬바람 소리나게
문을 닫은 엄마의 차가 멀어져갈 때
차창 너머로 뒤돌아보며
눈물에 매달려가고 있는 손자를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할아버지는

함께
이야기를 만들고

사랑을 주고 받으며

그렇게 살다

멀어져간 손자가 떠난 자리에 서서

밑둥이 드러난 채 밤이 올 때까지

그렇게 서있어야만 했습니다

하루 하루
함께 보내지 못한
상윤이의 신발만 바라보며
바람의 온기로만 버텨오던
할아버지의 우편함에는
이름 모를 고지서들로 쌓여만 가고 있었고
부산스럽게 닫히던 그 문 조차도
열린적이 없었다고
지나는 낮선 바람이 속삭여 주고 있었습니다

사랑을 그려준 사람

어부바 할아버지 당신은

이세상 어디에 있든

영원한 나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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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4

반하나안반하나
호박먹은때지(탈퇴)

어릴적 대청마루에 서계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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