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남편의 빚까지 갚아가며 ...

프로필

반하나안반하나
반하나안반하나
안산시 상록구 본오3동
매너온도
48.6°C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에

죽은 남편의 빚까지 갚아가며

어린 세 딸을 홀로 키우다 보니

억척같이 살아낸 인생이었습니다.

어느덧 별이 친구가 되어

샛별 보고 나간 걸음이

다시 낮을 건너온 별이 걸어 나오고서야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하루 하루가 너무나 힘들었지만.

내가 아니면

저 어린것들 누가 거둘까.

자식은 엄마를 삶 가운데

붙들어 두는 닻이라더니...

그렇게

엄마는 끝까지 엄마여야만 했기에

하루 하루 일그러진 아픔들이

얼굴을 들고 따라 나오며

"여기가 바닥이겠지"할 때마다

논바닥 갈라지는 가슴일지라도...

자식을 생각하는 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이 엄마라서

눈물을 걸음에 걸어둔 채

살아야만 했습니다.

자식들 앞에

일생을 눈물로 모두 보여주며

스스로 가슴에 무수한 못 자국을

매어 오면서 그저 자식 키워놓고

옛말하고 살 거라는 내 생각은

자식이 노후대책이 아닌 노후 폭탄이

돼버렸으니깐요.

두 딸의 이혼이라는 충격도 가시기도 전에

악착같이 일해 마련해 놓은 19평 집

하나마저도 큰사위 사업 밑천에 담보로 해준 뒤

부도가 나자

사위와 큰딸은 이혼하게 되었고

원금과 이자는 저의 몫이 되어

이젠 다달이 그마저도 힘들어저

가방 하나에 지나온 인생을 담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 하나 장만해

새끼들이랑 비 안 맞고

따신 국물이 내 새끼 목구멍에 넘어갈 때가

제일 행복 했다는 까막득한 과거 몇 조각을 떠올려

보면서 말이죠.

전생에

빚의 고리가 많은 순으로

인연을 맺어주는 게

부모와 자식 간이라던데

떠나는 가슴이든 남겨진 가슴이든

아물지 못한 가슴으로

떠나가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흐린 기억을 더듬어

허허벌판뿐인 시간의 건널목을

지나 빈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서있기도 힘든 문이 거미줄에 매달린 채

지나는 바람에 덜거덕 거리고 있는

이곳은 친정엄마가 마지막 사시던

집이었기에 날이 밝아오자.

머리에 수건을 덮어 쓰고선 문도 고치고 거미줄도

걷어내 가며

새 단장을 하고 앉았습니다.

내리는 비를 보며

지난날 학교에서 비 맞고 생쥐 꼴로 들어선

나를 아궁이 불에 얼렁 앉히어

숯불에 익힌 감자를 꺼내어 호호 불어 내 입에

넣어 주시던 엄마가

지금도 부뚜막에서 환하게 웃고 계신 것

같은 모습에 있어야 할 빈자리를 보며

눈물 짓고 말았습니다..

"엄마...엄마...보고 싶어",

이 나이가 되어도

그리운건 엄마이기에

엄마를 찾고 부르다 지친 저는

동네 어귀를 돌아 마을 입구에 있는

큰 팽나무에 앉아

먼 발취서 올라오는 저를 기다려 주는

엄마가 앉아계시던

이 자리에 이젠 제가 엄마의 나이가 되어

앉아습니다.

엄마의 흔적을 찾아

한 장의 사진이 된 시간을 더듬어

흐르는 눈물을 치맛자락에다 지운 뒤

한줌의 바람을 안고

슬픔이 걸려있는 산비탈 기슭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엄마... 엄마..."

부르면서 말이죠.

풀숲을 걸어

이젠 봉분이 지워져 더기가 돼버린

엄마의 무덤가를 쓸어안고서

못다 한 울음을 울고 말았습니다.

그 고운 모습 어딜 가고

골진 주름 위 흰서리 얹고

해거름에 굽은 등 보이며 걸어가는 뒷모습에

소리없이 눈물이 고일 때가

지금도 아련히 묻어오면서 말이죠.

한참을 머물다 내려서는 발길에

도돌이표 없는 엄마의 가슴을 닮은

서쪽으로 멀어지는 석양을

가슴 아픈 시선으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석양이 붉은색이라면

엄마는 무슨 색일까... 라면서

이별의 계절을 지나

갯바람에 젖은 이슬이 머물다

아침햇살에 사라져간 자릴 더듬어

뒷산에 올라 정신없이 나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게를 진 채 내려서는 나의 눈길에

우리 집 굴뚝과 마당에서 피어나는

연기에 놀라 서둘러 싸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당 한 편의 빈 솥단지에는 무언가가 끓고 있었고

부엌에서는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저는 지게를 내려놓고 돌아서려는 그때

촛불이 켜진 생일 케이크를 들고

세 딸이 서 있었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아...그러고 보니

오늘이 제68번째

저의 생일이었습니다.

살아생전보다 좋았던 향기는 없듯

빙 둘러 앉은 밥상엔 어느새 차려놓은

음식들로 행복이 피어나고 있었고

"왜 왔어 바쁠텐데..."

"엄마 엄마 "하고

내미는 종이를 펼쳐본 저는

"정말..."이라는 말과 함께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두 딸이 어엿하게 내민

공무원 합격 통지서를 보면서

"장하다 ..내 딸들..."

"그리고 엄마 나도

장 서방이랑 다시 합치기로 했어..."

"새끼들 봐서 그래야지..."

"장서방이 작지만,

엄마랑 살 집 마련해 놨어.."

"너희끼리

오붓하게 재미나게 살아..."

"같이 가. 엄마"

'그래요 같이 가요..."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저는

"나 다시 취직할까봐'

"엄마가 ...어디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이야."

"뭔데..그게 뭔데?"

"너네들 엄마로 다시 취직 하려고..."

제 둥지 틀고 일어난 자식들을

아직도 품고 계신 사람

그런 엄마를 보고 딸들은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울 엄마 취업을 축하해요"

다시 딸들을 만날 수 있어서...

다시 엄마를 볼 수 있어서...

엄마는 자식에게

만 번을 찔려도 안아픈게

엄마인 것 같습니다.

엄마의

자식 사랑에 유통기한은 없다며

오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엄마라는 직업을

만드는 첫날이 되었습니다.

"딸들아,엄마가 힘낼게..."

주고 또 주면서도

더 주지 못해 한이 된 사람.

그 사람은

엄마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 조회 246

댓글 16
4

info

댓글 작성자가 삭제한 댓글이예요.

반하나안반하나
준호네
안산시 상록구 해양동

항상 힘내세요! 화이팅요.

반하나안반하나
산사람(탈퇴)

역시 엄마는 대단하시네요
힘내세요
화이팅해요~~

반하나안반하나
탱규(탈퇴)

너무 고생하셨어요ㅜㅜ 앞으로도 더 좋은일 많이 생길거예요💕 항상 웃는 얼굴로 화이팅!!!

반하나안반하나
붕어빵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4가

글 읽다 저도 모르게 울컥해서ㅠ
정말 대단하셔요~~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
위대한 엄마들
힘내시고 빠샤~~~~~~~~~

반하나안반하나
호박먹은때지(탈퇴)

화이트 후레쉬
엄마는 신보다 위대하죠

1
반하나안반하나
갱이
안산시 상록구 해양동

엄마라는 직업이 때론 힘들고 외롭고...
사표쓰고 싶은날도 많치만 모든걸 삭히면서 살아가게 되는것 같아요

반하나안반하나
쏠맘
안산시 상록구 사동

가슴이 찡하네요
눈물이나요ㅜㅠ

info

댓글 작성자가 삭제한 댓글이예요.


지금 당근 앱을 다운로드하고
따뜻한 동네생활을 경험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