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할라꼬 비싼 돈 주고 또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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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하나안반하나
반하나안반하나
안산시 상록구 본오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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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쟁이할매1-1

뭐할라꼬 비싼 돈 주고 또 사물라꼬?
집에서 마누라가 차려주는 밥이
최곤데..“

할머니가
입담 속에 피워나는 정을 뒤로 하고
가게 앞 기다란 나무의자에 앉아

하늘에
반딧불이 사라진 지 오래인
까만 밤하늘을 흔적없는 바람을 친구삼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익숙한 듯 중년의 남자가 다가와 앉습니다.

“와 요즘 안색이 안 좋노?”

“사는 게 힘이 드네예.
좋은 시절은 다 가뿌고...“

“니는 아직도 시간 타령이가?
시간이 지나갔다고
생각하지 말거래이.
단디 봐라….
시간은 언제나 니 앞에 안 있디나?“

아직도
그 밤이 믿기만 하다는 듯
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는 남자에게

하나둘 손님들이
떠나간 빈자리를 넘어다보던
할머니는 한마디 더 건넵니다.

“전번 추석 때 고향엔 댕기왔나?“

“언지예, 못 갔심더.”

“딸은 시집 보내면 철들어 오고
아들은 장가가면 남 되어 온다더니만도.. 그 말이 틀린 게 없네.“

“할매는 왜 자꾸
둥근달만 올려다 봅미꺼?”

“일 년에 서너 번도
못 보는 자식놈 얼굴 같아본다 와?
자네 엄마도
내처럼 저 달을 보고 있을끼다.
혹시라도 저 달이 홀쭉해지면
멀리 있는 자식놈 얼굴이
야윈 건 아닐까 걱정하면스로..“

“그럴까예?”

“그게 부모 맘 아이겠나.”

“할머닌 어쩌다가 이 장사를
시작하게 되셨슴미꺼?”

할머닌 지나간 시간만큼
아름다운 세상 이야기가 또 있냐는 듯
벌써 다가오는 슬픔의 눈물부터 훔칩니다.

“어릴 적 배가 너무 고파가
어린 동생 손을 잡고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나는 연기라도 마실라꼬
무작정 장터로 간 내는
배 고프다고 울고 있는 동생을
꼭 껴안으며 생각했데이.“

“.......“

“내가 이 담에 어른이 되면
저 하얗게 피어나는 연기처럼 배고픈 이들에게 따스함을 주고 살겠노라고“

물속같은 할머니의 속을
그렇게 내보이시며

우리는 살면서
인연이 소중하다는 걸
모르고 살아간다며

오늘
눈으로만 만나는 인연이라 해도
그 인연을소중히 가꿔가는 것부터
우린 시작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이 새겨진 길을 따라
남자는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얗게 피어난 연기처럼
훈훈함이 넘쳐서일까요

낯선 사람 서너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선
할머니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이…. 이봐라.
방 안에 있는 그것 좀 가져오니라."

일하던 아주머닌 그 소리에 뭔가를 낑낑거리며 들고 나오는데요...

상자 안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십 원짜리 백 원짜리
천 원짜리 세상에 있는 돈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식사를 하다 말고
“이게 다 얼마고?”

라며
눈으로 헤아려 보고 있는 걸 보며

“얼마면 우얄낀데..
왔으면 가만 서 있지 말고
퍼떡 들고 가라.“

내가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을

돈으로...
이름으로...

남기기보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의 가슴에

행복으로 ..
고마움으로...

새겨놓는 게
더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씀하는 할머니에게
감사의 고개를 숙이던
그 사람들이
탄 차가 멀어지는 걸 바라보며

세상을 밝게 비추는 일을
다 하고 멀어지는 저 달처럼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할머니.. 여기 국밥 세 그릇만 주세요.“

“와 또 왔노?
욕 쳐먹을라꼬 왔나?“

“네….
할머니한테 욕을 안 들었더니
몸이 근질근질해서 왔어요.“

“시끄럽고..
국밥이나 마이 처묵고 가라.”

할머니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휴가나온 군인들을 보고선

“너거들 총알 산다꼬
부모님한테 돈 달라 하지 말거래이.
나라를 지킨다꼬 욕보이까네.
오늘은 밥값 안 받으꾸마.“

“할매요, 그라먼
지도 돈 안 받을꺼지예?”

“머락꼬 쳐 씨부리 쌓노.
자. 이거나 퍼떡 쳐먹고 가서
열심히 쫒아댕기거라..“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던 남자 하나가
반가운 듯 아는 척을 하고 나섭니다.

“할매요 ..
저 왔심더. 여전히 욕 보시네예.“

“씨불알 놈….
살다살다 별소릴 다 듣겠네.
니 눈은 억수로 좋은가베.
욕도 다 보이고.“

“하하하..
어찌나 세월이 빨리 가는지.
자주 못 와봤네예.“

“아직도 모리나...
세월이 가는 게 아이라
니가 가는 거데이..“

“맞네예..
세월은 가만히 있는데
우리만 왔다갔다 하는 거네예.
역시 우리 할매 말씀은 명언이십니다.“

“뭐라꾜 쳐시부리산노..."

오늘도
욕쟁이 할머니의 국밥집 가마솥에는
사랑으로 넘쳐나는 욕들이
하얀 연기 따라
펄펄 피어나고 있을 때

티브이에선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있던 할머닌

“저것들 와 또 쌈박질이고..
비싼 백성들 돈으로 밥 쳐먹여놨디만은 저 지랄들 하고 자빠졌네“

“할매요...
국회의원들한테
시원하게 욕 좀 해주이소.“

“새해부터
욕 쳐들어먹꼬 싶는갑다 그자?
그라먼 내 한마디 해주꾸마.“

가게 창 밖엔
까만 도화지 같은 밤하늘에
은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눈꽃들이 피어나고 있을 때

“야.. 이 썩을놈들아!
밖에 금배지 달면 뭐 하노,
맘 속에 금배지 달아야제.
인자 너거 밥그릇 챙긴다꼬
쌈박질 고만하고, 우리 서민들 밥그릇도 쫌 챙기도가.....
듣고 있나, 이 씨불알놈들아..“

“와…. 할매... 최고…. 최고..”

국밥집 안에는
할머니의
찰지고 맛깔나는 욕들이
울려 퍼질 때마다

환호하는
사람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밤하늘의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밑천은

학벌도..
돈도...
얼굴도 아닌...

따뜻한 가슴 하나면 충분하다며.

∙ 조회 107

댓글 2

반하나안반하나
혀니찡
안산시 상록구 사동

잘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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