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가득 동탯국을 담고,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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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한포대
콩한포대
강남구 개포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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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 8

항아리 가득 동탯국을 담고, 양은 밥통에 
밥도 담고, 소쿠리마다 볶은 나물과 무친 
나물을 담고, 빈 그릇들을 나물 중간중간에 
어퍼 넣고, 커다란 양은 다라에 차곡차곡 챙기고 그 위에 보자기로 씌워 할머니 머리에 이시고,
 내겐 막걸리 주전자를 들게 하셨다.
할머니는 밭 뚝과 논 뚝을 따라 걸으셨다.
난 할머니 뒤를 졸졸 쫓아갔다.
한참을 갔나 싶은데, 할아버지도, 
동네분들이 다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촌이 뛰어와 할머니 머리 위에 든
양은 다라를 내려 주었다.
난 할아버지 옆에 앉으며, 주전자를 들고
"물, 할아버지" 했다.
할아버지는 주전자를 받으며
"막걸리" 하셨다.
논둑에 있는 빈 그릇에 한 잔을 따르고, 
힘들게 드셨다. 할아버지가 막걸리를 
들이켜고, 동네 분들에게 주전자와 
막걸리 그릇이 오고 갔다.
그 사이 삼촌과 할머니는 논둑 평지에
밥상을 차렸다.
밥을 덜고, 국을 푸고, 항아리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났다.
난 밥을 먹기 위해 고무신을 벗고 논에
들어가 진흙을 묻혔다.
삼촌이 물었다.
'진흙은 왜 묻혔는지?'
난, 다들 발에 진흙을 묻혔기에 나도 밥 
먹기 위해 발에 진흙을 묻혔다고 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동네분들도
모두가 웃으셨다.
"밥 먹기 위해 논도 들어가고, 일은 네가
다 했다." 하시며 웃으셨다.

그놈도 논에 같이 있었다.
난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동탯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논둑 위에서 먹는 밥은 맛있었다.
햇살이 따가워도 할아버지 그늘이 있고, 
여러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밥이 
더 맛있었다.
그놈은 삼촌이랑 밥을 먹고 있었다.
그놈은 논에서 뭘 하는지 궁금했다.
식사 후 막걸리와 남은 밥을 반찬과 같이 
주먹밥으로 만들어 주시고는 할머니는 
내게 나무 그늘에서 지키라고 하시며, 
항아리와 빈 그릇들을 들고 가셨다.

내가 심심해할까 봐?
논에서 뭐 하는지?
궁금해하는 날 두고 가셨다.
난 그늘에 앉아, 모두를 보고 있었다.
그놈과 검둥이는 못 줄을 잡고, 
어른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밥도 먹고, 나무 그늘에서 바람을 맞고,
구름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나 보다, 난 나무에
기대서 졸고 있었다.
졸고 있는 내 코가 간지러웠다.
막내 고모가 강아지풀로 내 코를 만졌다.
난 눈을 뜨고, 막내 고모를 봤다.
할아버지와 동네 분들은 주먹밥을 먹고
계셨다. 고모는 내게 건빵을 주었다.
잠결이라 손에 든 건빵을 주머니에 넣었다.
목이 말랐다.
할아버지가 주전자를 들고 계시기에
"나도" 했다.
"술이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응"
"나도 한잔"
"목마를 때 마시면, 시원하다며"
내 말에 모두들 웃으셨고, 할아버지는
웃으며 주전자 뚜껑에 조금 따라 주셨다.
달지 않은 미숫가루 같았다.
난 받아 마시고는 잠이 깼다.
진흙이 묻은 내발이 가려웠다.
발을 긁고 있는데, 그놈이
"발 씻을래?" 했다.
"응"
그제야 그놈이 내 옆에 있는 줄 알았다.
막내 고모는 얼추 끝난 것 같다고, 
그놈 보고 나랑 집으로 가라고 했다.
나머지 못 줄은 고모가 잡겠다고...
올 때처럼 난 주전자를 들었고, 그놈은 
남은 그릇을 보자기에 쌓아 들었다.
주전자와 고무신을 들고 난 그놈을 
따라 걸었다. 
논둑을 지날 때쯤 그놈이 큰 웅덩이 
앞에서 발을 닦았다. 
물은 맑았다.
나도 발을 닦기 위해 내려갔다.
주전자를 두고 내려갔어야 했는데,
들고 내려가다. 웅덩이에 빠질 뻣 했다.
그놈이 날 바친고 있어서 퐁당은 안 빠졌다.
그놈은 뚝 가장자리에 날 앉히고, 주전자에 
물을 받아 내 발에 뿌려 주었다.
발을 비볐다.
진흙이 씻겨나가면서도, 남았다.
그놈은 다시 주전자에 물을 담아 뿌리면
손으로 내 발을 씻겼다.
깨끗해졌다. 내 발이
"발도 하얗네" 그놈이 말했다.
"응?"
그놈 발을 봤다.
검고 컸다.
"햇살에도 하얗다. 넌"
"응"
무슨 말하는 줄 몰라 난 내 발만 보다,
그놈 발을 보다 했다.
큰웅덩이에서 내려가는 물 사이로 
물고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난 "물고기" 하고 외쳤다.
그놈은 주전자를 들고 있다.
물고기를 펐다.
내 발만 한 물고기를 그놈이 잡았다.
순간 놀라고 재미있었다.
무지 빠른 그놈이었다.
물고기를 잡고, 그놈은 양은 밥통 속에 
넣고 물 담았다.
우리는 웅덩이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다음 물고기를 위해...
그렇게 그놈과 난 물고기를 주전자로 
잡으러 걸어갔다.
물고기만 보며 따라 걷다 보니까.
신장로 앞까지 와 버렸다.
해가 지며, 노을이 피어올랐다.
그놈을 따라 물고기가 든 밥통을 들고
쫓아가는 날 그놈이
"무겁지?" 묻는다.
무거운지도 몰랐다.
물고기와 물이든 밥통이...

물고기를 쫓아 논 물길을 가는 그놈을 
계속 쫓아 가느냐고, 무거운 것도, 
노을이 피는 것도 모르고 쫓아다녔다.
밥통에 물고기는 무사했다.
물은 조금씩 흘러 옷을 적게 했지만,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신장로 앞이라, 집으로 가는 길은 
모르지만, 그놈이 있으니! 안심했다.
그놈은 주전자에 물고기, 밥통 들고 오는
나와 같이 걸어 주었다.

할머니 집에 도착했을 때, 막내 고모가 
펌프 앞에 있었다.
그놈과 내가 물에 옷을 반쯤 젖어서 
돌아 온 걸 보고, 고모는
"물에 빠졌어?"라고 했다.
난 '물고기' 하고는 양은 밥통을 보여줬다.
그놈은 주전자를 내려놓고, 고모한테 
꾸벅하고는 뛰어 사라졌다.
막내 고모는 양은 밥통을 보았다.
내 발만 한 물고기 두 마리 보고 웃었다.
"이거 잡았어!"
난 신이 나서 말하고, 그놈이 두고 간
주전자 뚜껑을 열어 보여 주며,
" 여긴 더 크다"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이 와서 물고기
구경을 했다.
할머니는 물고기 국 끓여야겠다고 
하시며 웃으셨다.
주전자 속엔 그놈 발만 한 물고기 
두 마리와 내 손만 한 물고기, 
양은 밥통 속엔 내 발만 한 물고기 
두 마리가 저녁 반찬이 되었다.

논물 흘러가는 길마다 물고기는 살았는데,
그 시절은 논물 길이 끊기든 사라진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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